성령 봉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이 나를 시기 질투하여 안 좋게 대하는 것쯤은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적으로 지도한다는 봉사자들이, 자신이 맡은 세미나 참가자들을 험담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중 특히 M 자매님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제동을 걸어왔다.
이분은 내가 처음 성령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정말 천사처럼 보였던 분이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며 우러러보던 봉사자 선배였다. 그런데 나를 미워하는 그분의 안 좋은 모습을 보게 되니,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한 탓인 것만 같아 주님께 너무나 죄송했다. 그분은 처음에 내게 잘 대해주며 나더러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늘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렇게 나를 예뻐하시던 그자매님은 봉사자 회장님과 많은 신자들이 나를 따르니 점점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정도가 도를 넘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들을 해왔다.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분을 ‘나를 겸손으로 이끄는 은인’으로 받아들이며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다.
M 자매님으로 인해 겪는 모든 고난을 그분의 영적 성화를 위한 희생과 보속으로 바쳐드리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깊은 침묵 중에 생활의 기도를 바쳐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해남에서 7주간의 성령 세미나가 열렸다. 봉사자 중 내가 가장 젊었기에 평소에는 늘 젊은 팀을 맡아왔다.
그런데 그동안 할머니 팀을 맡아오던 M 자매님이 “아유, 할머니들! 나는 맨날 늙은이들만 주네.”라며 할머니들을 맡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다른 팀장들 역시 할머니 팀은 다들 피하려 했다. 나는 원래 어르신들을 무척 사랑했다. 누구든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할 봉사자들이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가리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래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들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면 제가 할머니들을 맡을게요. 저하고 팀을 바꾸실까요?” 그러자 M 자매님은 금세 화색이 돌며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하고 반색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젊은 팀 대신 할머니 팀을 맡게 되었다. 할머니들의 주된 대화의 화젯거리는 단연 며느리와의 갈등이었다.
그동안 젊은 팀을 맡으며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며느리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나는 할머니들을 며느리들과 사랑으로 화합시켜 드리고 싶었다. 나 또한 시어머니로 인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항상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기에 단 한 번도 시어머니가 미운 적이 없었고, 오직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고부갈등으로 상처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할머니들과 대화할 때마다 생활의 기도로 그분들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사랑하올 나의 예수님! 며느리와의 갈등으로 인해 상처 나고 굳어져 메마른 할머니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친히 녹여주시고 사랑의 불을 놓아주시며,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그리하여 며느리들과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게 하소서.”
나는 이렇게 기도하며 세미나를 진행했다. 며느리와의 갈등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모든 일상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의 사랑과 결부시켜 이야기해 드렸다. 그러자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있던 할머니들의 마음이 어느새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 팀에 속한 열다섯 분의 할머니는 서서히 사랑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에게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함께 찬미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현존 안에서 너무나 기쁘게 사랑을 나누었다. 이로 인해 우리 팀이 매일같이 가장 늦게 들어가게 되니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적을 받아 혼난다고 해도, 사랑받은 셈 치며 그 희생을 기쁘게 봉헌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변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올라 부드러워졌을 때, 나는 다음 단계로 내 탓이오의 영성을 알려드렸다. “어르신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평화로워져요. 예를 들어 돌멩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날아와 내가 다쳤다면 그 자리에 있던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고 저쪽에 앉아 있었다면 그 돌멩이에 안 맞았겠지요? 그쵸?”
그 외에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내가 있었기에 상대방이 죄를 지었으니 평생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사랑받은 셈치고 기쁘게 봉헌하면서 살아온 내 사연을 말씀드렸다. “어르신들이 ‘내가 있었기에 며느리가 죄를 짓게 된 것이구나. 며느리들이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베풀어 보셔요.
이제까지 그 모든 것을 다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며느리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하자 “그 말이 맞네.” “하이고, 이번 성령 세미나는 참말로 기쁘고도 즐겁네.” “이번에는 세미나 안 하려 했는디, 우리 예쁜 팀장님 말을 들어본게 참말로 구구절절 하나도 틀린 것이 없소.” “그랑께 이번에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
“참말로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 아니겄소?” 할머니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깊은 회개를 하셨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며느리에게 구박받아 쌓였던 울화가 다 풀리고 상처가 치유되네.” 어르신들은 용서하지 못했던 며느리들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갈등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 부둥켜안고 울며 참된 주님의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를 도구 삼아 이 놀라운 기적을 이루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할머니들은 그간 며느리한테 구박당한 울화가 풀어지고
상처가 치유되어 그동안 용서 못 했던 며느리들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또 며느리와의 갈등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자신
들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이 너무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할머니
들과 부둥켜안고 참된 주님의 사랑을 나누며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아멘!!!아멘!!!아멘!!! 감사합니다 !!!
“하이고, 이번 성령 세미나는 참말로 기쁘고도 즐겁네.”
“이번에는 세미나 안 할라고 생각했는디, 우리 예쁜 팀장님 말을 쭉 들어본께
참말로 구구절절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소.” “그랑께 이번에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라우.” “참말로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이 아니드라고?”
등등하면서 너무들 좋아하셨다.
아멘^♡^
제 마음도 기뻐지며 흐뭇한 행복으로 느껴져요...
감사하게도 엄마가 계신 덕분이어라우~^^
할머니들에게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함께 찬미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현존 안에서 너무나 기쁘게 사랑을 나누었다.
이로 인해 우리 팀이 매일같이 가장 늦게 들어가게 되니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적을 받아 혼난다고 해도, 사랑받은 셈치며 그 희생을 기쁘게 봉헌했다.
아멘!!!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 팀을 자청해서 맡으며
성령 봉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이 나를 시기 질투하여 안 좋게 대하는 것쯤은 사랑받은 셈 치고 기쁘게 봉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적으로 지도한다는 봉사자들이, 자신이 맡은 세미나 참가자들을 험담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중 특히 M 자매님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며 제동을 걸어왔다.
이분은 내가 처음 성령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정말 천사처럼 보였던 분이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며 우러러보던 봉사자 선배였다. 그런데 나를 미워하는 그분의 안 좋은 모습을 보게 되니, 모든 것이 내가 부족한 탓인 것만 같아 주님께 너무나 죄송했다. 그분은 처음에 내게 잘 대해주며 나더러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늘 형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렇게 나를 예뻐하시던 그자매님은 봉사자 회장님과 많은 신자들이 나를 따르니 점점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정도가 도를 넘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들을 해왔다.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분을 ‘나를 겸손으로 이끄는 은인’으로 받아들이며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다.
M 자매님으로 인해 겪는 모든 고난을 그분의 영적 성화를 위한 희생과 보속으로 바쳐드리며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깊은 침묵 중에 생활의 기도를 바쳐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해남에서 7주간의 성령 세미나가 열렸다. 봉사자 중 내가 가장 젊었기에 평소에는 늘 젊은 팀을 맡아왔다.
그런데 그동안 할머니 팀을 맡아오던 M 자매님이 “아유, 할머니들! 나는 맨날 늙은이들만 주네.”라며 할머니들을 맡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다른 팀장들 역시 할머니 팀은 다들 피하려 했다. 나는 원래 어르신들을 무척 사랑했다. 누구든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할 봉사자들이 나이를 이유로 사람을 가리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래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들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면 제가 할머니들을 맡을게요. 저하고 팀을 바꾸실까요?” 그러자 M 자매님은 금세 화색이 돌며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하고 반색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젊은 팀 대신 할머니 팀을 맡게 되었다. 할머니들의 주된 대화의 화젯거리는 단연 며느리와의 갈등이었다.
그동안 젊은 팀을 맡으며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며느리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나는 할머니들을 며느리들과 사랑으로 화합시켜 드리고 싶었다. 나 또한 시어머니로 인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항상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했기에 단 한 번도 시어머니가 미운 적이 없었고, 오직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고부갈등으로 상처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할머니들과 대화할 때마다 생활의 기도로 그분들을 주님께 온전히 봉헌했다. “사랑하올 나의 예수님! 며느리와의 갈등으로 인해 상처 나고 굳어져 메마른 할머니들의 마음을 주님께서 친히 녹여주시고 사랑의 불을 놓아주시며, 온전히 치유해 주소서. 그리하여 며느리들과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게 하소서.”
나는 이렇게 기도하며 세미나를 진행했다. 며느리와의 갈등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모든 일상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과의 사랑과 결부시켜 이야기해 드렸다. 그러자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있던 할머니들의 마음이 어느새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내 팀에 속한 열다섯 분의 할머니는 서서히 사랑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에게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함께 찬미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현존 안에서 너무나 기쁘게 사랑을 나누었다. 이로 인해 우리 팀이 매일같이 가장 늦게 들어가게 되니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적을 받아 혼난다고 해도, 사랑받은 셈 치며 그 희생을 기쁘게 봉헌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변화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불타올라 부드러워졌을 때, 나는 다음 단계로 내 탓이오의 영성을 알려드렸다. “어르신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평화로워져요. 예를 들어 돌멩이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날아와 내가 다쳤다면 그 자리에 있던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돼요. 내가 그 자리에 앉지 않고 저쪽에 앉아 있었다면 그 돌멩이에 안 맞았겠지요? 그쵸?”
그 외에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내가 있었기에 상대방이 죄를 지었으니 평생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고 사랑받은 셈치고 기쁘게 봉헌하면서 살아온 내 사연을 말씀드렸다. “어르신들이 ‘내가 있었기에 며느리가 죄를 짓게 된 것이구나. 며느리들이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을 베풀어 보셔요.
이제까지 그 모든 것을 다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며느리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하자 “그 말이 맞네.” “하이고, 이번 성령 세미나는 참말로 기쁘고도 즐겁네.” “이번에는 세미나 안 하려 했는디, 우리 예쁜 팀장님 말을 들어본게 참말로 구구절절 하나도 틀린 것이 없소.” “그랑께 이번에 오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몰라.”
“참말로 이것이 바로 주님의 부르심 아니겄소?” 할머니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깊은 회개를 하셨다. 할머니들은 “그동안 며느리에게 구박받아 쌓였던 울화가 다 풀리고 상처가 치유되네.” 어르신들은 용서하지 못했던 며느리들을 용서하기 시작했다.
갈등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워 부둥켜안고 울며 참된 주님의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를 도구 삼아 이 놀라운 기적을 이루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