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10화. 다섯째 시동생이 바른길을 가도록 온전히 봉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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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gp9062023-12-10 17:18
결혼 전에는 또 어떠했는가? 서울 시고모 딸 결혼식에 갔을 때 우리 모두 그 집에서 잤다.
좁은 공간에서 시어머니랑 그 집 식구들도 모두가 함께 잘 때였다. 그 시동생은 내 곁으로 와
옆에서 잠을 청하며 “형수, 나 이제 결혼하면 형수 곁에서 못 자니 오늘 형수 곁에서 잘래.” 하던
내 자식과도 같은 그런 귀여운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완전히 변해버려 내게 냉랭하게 행했던 모든 일들이 섭섭할 수도 있었지만,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가 우리의 사이를 끊어놓기 위하여, 또 나를 괴롭히기 위하여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생각하니 그가 너무너무 안쓰럽기까지 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시어머니만 빼고 가족들이 반대할 때 형수와 똑같다고 “결혼만 성사시켜 주면
성당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겠다.”던 그가 성당도 가지 않고 또 가족에게 이토록 무심하게 변한 것은
깨어있지 못한 것이니, 내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다섯째 시동생 부부가
주님과 성모님 사랑 안에서 더욱 사랑을 나누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가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좁은 공간에서 시어머니랑 그 집 식구들도 모두가 함께 잘 때였다. 그 시동생은 내 곁으로 와
옆에서 잠을 청하며 “형수, 나 이제 결혼하면 형수 곁에서 못 자니 오늘 형수 곁에서 잘래.” 하던
내 자식과도 같은 그런 귀여운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완전히 변해버려 내게 냉랭하게 행했던 모든 일들이 섭섭할 수도 있었지만,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가 우리의 사이를 끊어놓기 위하여, 또 나를 괴롭히기 위하여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생각하니 그가 너무너무 안쓰럽기까지 했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시어머니만 빼고 가족들이 반대할 때 형수와 똑같다고 “결혼만 성사시켜 주면
성당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겠다.”던 그가 성당도 가지 않고 또 가족에게 이토록 무심하게 변한 것은
깨어있지 못한 것이니, 내 기도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다섯째 시동생 부부가
주님과 성모님 사랑 안에서 더욱 사랑을 나누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가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다섯째 시동생이 바른길을 가도록 온전히 봉헌하다
법대생 친구의 학비까지 남몰래 도와준 속사정이 있었음에도 여태껏 내게 단 한마디 말도 없었고, 집을 처음 방문한 큰형수인 나를 그토록 홀대했던 다섯째 시동생을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밀려오려 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대신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알지도 못한 채 뒷바라지했던 그 법대생 친구 역시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빌며, 나의 모든 희생을 기쁘게 주님 대전에 봉헌했다. 언제나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훗날 ‘혹시라도 내가 대순이 이모의 말만 듣고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어머니 제사로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다섯째 시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삼촌, 그동안 궁금한 것이 있어 물어봐요. 우리가 삼촌에게 매달 돈을 보냈잖아요. 그런데 어머님이 자주 오셔서, 형님 월급이 만 원 조금 넘던 시절에 ‘다섯째한테 10만 원 보냈으니 그 돈 내놓아라, 또 20만 원 보냈으니 그 돈 다오’ 하시며 자주 가져가셨거든요. 삼촌, 어머니께 그 돈 다 받으셨어요?”
하지만 시동생은 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그의 반응에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가 “형수님, 몸도 안 좋으신데 그동안 저희 뒷바라지하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셈 치고 봉헌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이라는 제목으로 아주 간단하게 펴냈던 소책자를 복사하여 시동생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당시 장남인 우리가 제사를 모셨기에 동생들이 제사 비용을 조금씩 보탰는데, 다른 시동생들이 5만 원씩 낼 때 다섯째 시동생은 명절이나 제사 때 빳빳한 새 돈 만 원권으로 30만 원씩 내놓곤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날 질문을 던지고 책자를 전한 뒤로는, 시동생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빳빳한 새 돈 대신 구깃구깃한 돈 20만 원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그 돈은 내가 써본 적이 없는 돈이었지만, 금액이 적어져서가 아니라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그 태도에 마음이 많이 아려왔다.
그러나 나는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다섯째 시동생이 정성 어린 새 돈으로 33만 원을 준 셈 치고 봉헌했다. 그러면서 그 시동생 부부가 영적으로 새로워져 천국을 갈망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다섯째 시동생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착하고 정의로웠던 그가 다시 올바른 길을 걷게 해주시고, 당신의 사랑 안에서 매일이 천국인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그 시동생이 중학생일 때 나는 남편과 약혼을 했었다. 당시 형수인 내가 너무 좋다며 “우리 형수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던 아이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시댁에서 사흘간 머물 때도 내 곁을 떠나기 싫어하여, 우리가 자던 방 한 귀퉁이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참으로 사랑스러운 시동생이었다.
내가 결혼 전에는 또 어떠했는가. 서울 시고모님 딸의 결혼식에 갔을 때 좁은 방에서 시어머니와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청해야 했는데, 그 시동생은 내 옆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형수, 이제 결혼하면 형수 곁에서 못 자니까 오늘은 형수 곁에서 잘래요.” 그렇게 내 자식처럼 귀엽고 소중한 존재였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이토록 냉랭하게 변해버린 현실이 섭섭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만건곤한 분열의 마귀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고 나를 괴롭히려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변해버린 시동생이 오히려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남자는 결혼 전후가 완전히 달라진다더니 그 말이 참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이 결혼하고 싶어 하던 여자를 온 가족이 반대할 때 나에게 말햇다.
“형수와 똑같은 사람이니 결혼만 시켜주면 성당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성당도 나가지 않고 가족에게 무심해진 그를 보며 내 기도가 참 많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나는 지금도 다섯째 시동생 부부가 주님과 성모님의 품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성가정 공동체를 이루어가기를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