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09화. 시동생 셋에 다섯째 시동생의 친구까지? 모르고 바친 희생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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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rina2024-02-05 07:21
+ + + + + + +
내가 알지 못한 채 학비를 대준 그 학생도, 내가 하고자 했으나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기꺼이 봉헌했다.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어 이렇게까지 희생을 바치도록
내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었다.
+ + + + + + +
아멘~! 아멘~!! 아멘~!!!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09화 감사드립니다. ~*^^*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 가득 받으시고,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글과 댓글의 글자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주/인/준/성/모/성/심/승/리/하/소/서. 아멘~!!!
내가 알지 못한 채 학비를 대준 그 학생도, 내가 하고자 했으나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기꺼이 봉헌했다.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어 이렇게까지 희생을 바치도록
내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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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609화 감사드립니다. ~*^^*
주님과 성모님의 은총과 사랑 가득 받으시고,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글과 댓글의 글자 수만큼 죄인들이 회개하고, 나/주/인/준/성/모/성/심/승/리/하/소/서. 아멘~!!!
dmsgp9062023-12-10 17:23
이번 미용 세미나로 서울에 왔는데 미용사까지 데리고 온 형수인 나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던
사실까지 겹쳐져 마음이 더더욱 쓰라리려 했다. 하지만 얼른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기도하니 마음만은 너무 기뻐져 왔다.
“하느님, 알지도 못한 채 죽어가면서까지 바쳐 온 제 희생을 기쁘게 봉헌하오니,
부디 다섯째 시동생과 그 친구 모두 정의롭고 자비로운 법관이 되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소서.” 하고 정성되이 기도를 바치니
내 마음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가 알지 못한 채 학비를 대준 그 학생도, 내가 하고자 했으나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기꺼이 봉헌했다.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어 이렇게까지 희생을 바치도록 내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었다.
사실까지 겹쳐져 마음이 더더욱 쓰라리려 했다. 하지만 얼른 마음을 바꾸어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셈치고 봉헌하면서 기도하니 마음만은 너무 기뻐져 왔다.
“하느님, 알지도 못한 채 죽어가면서까지 바쳐 온 제 희생을 기쁘게 봉헌하오니,
부디 다섯째 시동생과 그 친구 모두 정의롭고 자비로운 법관이 되어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소서.” 하고 정성되이 기도를 바치니
내 마음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올랐다.
내가 알지 못한 채 학비를 대준 그 학생도, 내가 하고자 했으나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의 희생을 사랑받은 셈치고 기꺼이 봉헌했다.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시어 이렇게까지 희생을 바치도록 내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었다.
시동생 셋에 다섯째 시동생의 친구까지? 모르고 바친 희생의 열매
흥선이네 집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함께 온 미용사를 굶주리지 않게 하여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어머니의 제종 여동생인 대순이 이모가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이모는 어린 시절 내가 작은 외숙에게 펜치로 생어금니를 뽑히던 날, 가마니를 짜며 곁에 계셨던 분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대순이 이모가 불쑥 물으셨다. “아야, 네 엄마한테 들었다. 다섯째 시동생을 법관 만들기 위해 네가 다 가르쳤다면서?” 누구에게도 생색내 본 적 없는 처지라 쑥스러워 대답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너도 참 여전하구나. 시동생이 어느 대학을 다녔니? 서울대?”
“아니에요, 서울대 가려다 단국대학교 법대에 갔어요.” 그때 이모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래? 예전에 우리 집에서 단국대 법대생이 하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그만둬야 할 형편이었단다. 그런데 글쎄, 친구 하나를 잘 둬서 그 친구가 학비를 다 대준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다더구나.”
나는 그저 ‘참 복 많은 학생이네, 부잣집 친구를 두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궁금증이 생겨 다시 물었다. “이모, 그 친구 집이 아주 잘사나 봐요?” “잘사는지는 그것은 잘 모르겠는데, 그 친구 집이 광주라고 하더라.” “혹시... 그 친구 이름도 기억나세요?” “그럼, 알지! 우리 집에도 자주 왔었는데. 이름이 김 만0라고 하더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 이름은 결코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집이 광주라는 점, 단국대 법대생이었다는 점, 그리고 시기가 정확히 일치했다. 바로 나의 다섯째 시동생이었던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시동생을 대학원까지 뒷바라지한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수중에 돈 한 푼 없을 시동생이 무슨 돈으로 친구의 학비까지 대주었겠는가.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나는 시동생 셋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남까지 포함해 막내 시누이와 여섯째 시동생, 그리고 두 명의 법대생, 총 네 명을 대학공부 시킨 셈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시도 때도 없이 그토록 큰돈을 요구하셨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나는 그저 달라는 대로 묻지도 않고 드렸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내 피땀 섞인 돈으로 시동생 친구의 등록금까지 받아 가셨던 것이다.
그 가난한 시절, 한 명을 대학 보내기도 힘든 형편에 나는 이름도 모르는 학생의 학비까지 대느라 내 몸 돌볼 겨를도 없이 죽어갔던 것이다. ‘만약 그 돈만이라도 아꼈더라면, 나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해 임종을 기다리지 않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시어머니가 그토록 원하시던 다섯째 시동생의 아파트도 기쁘게 마련해 드려 시어머니의 역정을 듣지 않았을 텐데... 가슴 한편에 아픈 기억들이 쓰라리게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더욱이 이번 세미나 길에 미용사까지 데려온 형수를 그토록 매정하게 외면했던 시동생의 모습이 겹치니 마음이 더없이 고달파지려 했다. 하지만 나는 얼른 마음을 바로잡았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셈 치며 기쁘게 봉헌하기로 했다. “하느님! 제가 알지도 못한 채 죽어가면서까지 바쳐 온 이 모든 희생을 당신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부디 다섯째 시동생과 그 친구 모두가 정의롭고 자비로운 법관이 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여 주소서.”
정성을 다해 기도를 바치니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차올랐다. 얼굴도 모른 채 학비를 대주었던 그 학생도,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일’을 대신 해주는 훌륭한 법관이 되기를 기도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어 이 엄청난 희생을 바칠 기회를 주시고, 내 삶을 인도하신 하느님께 오직 감사드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