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555화. 빌려준 100만 원과 외사촌 동생을 향한 마지막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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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sgp9062023-10-09 14:14
큰일 났다며 사색이 되어 달려온 그 애를 보자 너무 안쓰러워 나의 힘든 처지는 금세 잊었다.
나는 달러 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손님 중에 사채하는 사람에게 물어서
달러 돈 50만 원을 또 빌려다 주었다. 이제까지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쌀 한 번 빌려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고,
아이들을 굶기기까지 하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해 본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외사촌 동생 때문에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돈 빌리던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낸 것인지 지금도 아찔하다. ‘차라리 내일, 내일 하지 말고,
어려우니 한동안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으면 적금을 넣어 대출이라도 받았을 텐데….’
그러나 결국 그 후로 길영이의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행방이 묘연했다.
대리점에 찾아가 보니 대리점도 문을 닫은 것이 아닌가! 길영이가 빌려간 100만 원은
고스란히 내가 다 갚아야 했다. 그 많은 돈을 다 갚기까지는 너무나 긴 날들이었다.
그동안 시어머님 때문에도 여기저기 빌리러 다닌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나에게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하니
불쌍하고 안쓰럽게만 생각되어 내가 부끄럽고 힘든 것들은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니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달러 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손님 중에 사채하는 사람에게 물어서
달러 돈 50만 원을 또 빌려다 주었다. 이제까지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쌀 한 번 빌려달라고 부탁해본 적이 없고,
아이들을 굶기기까지 하면서도 아쉬운 소리 한 번 못 해 본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외사촌 동생 때문에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돈 빌리던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해낸 것인지 지금도 아찔하다. ‘차라리 내일, 내일 하지 말고,
어려우니 한동안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으면 적금을 넣어 대출이라도 받았을 텐데….’
그러나 결국 그 후로 길영이의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행방이 묘연했다.
대리점에 찾아가 보니 대리점도 문을 닫은 것이 아닌가! 길영이가 빌려간 100만 원은
고스란히 내가 다 갚아야 했다. 그 많은 돈을 다 갚기까지는 너무나 긴 날들이었다.
그동안 시어머님 때문에도 여기저기 빌리러 다닌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나에게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할까?’ 하고 생각하니
불쌍하고 안쓰럽게만 생각되어 내가 부끄럽고 힘든 것들은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니 극복할 수 있었다.
dmsgp9062023-10-09 14:10
아멘. 아멘. 아멘.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신협 전무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내일 갚을게요.” 하면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그 당시
갑자기 50만 원이란 큰돈을 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미용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는 집도 별로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하며 헐뜯는 모습들이 너무 싫어서 평소에 누구를 사귀며
지내지도 않았기에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웠다. 수많은 집을 들러 어떤 집에서는
5만 원, 또 다른 집에서는 3만 원, 5천 원, 이렇게 조금씩 겨우겨우 빌려
신협에 50만 원을 갚았다.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는 나는,
길영이의 지키지 않고 반복되는 “내일은 꼭 갚을게.”
다음날이 되면 “내일은 꼭 갚을게.” 하는 말을 매번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미용실에서 손님을 받아야 할 내가
손님도 받지 못한 채, 계속 매일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러다가 너무 신경을 썼는지
신장까지 나빠져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바로 돈을 갚을 줄 알았던 동생은
계속 매일 ‘내일 갚겠다.’는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무려 한 달 정도 다 되었을 때,
그 동생은 갑자기 사색이 되어 미용실에 뛰어들어왔다. 길영이는 절박한 목소리로
“누나, 누나! 큰일 났어. 지금 50만 원이 없으면 피어리스 대리점이 넘어가게 돼.
그러니 누나 달러 돈 좀 빌려다 줘, 그럼 내일 한꺼번에 100만 원 다 갚을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신협 전무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집 저집을 다니면서
“내일 갚을게요.” 하면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그 당시
갑자기 50만 원이란 큰돈을 빌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미용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는 집도 별로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하며 헐뜯는 모습들이 너무 싫어서 평소에 누구를 사귀며
지내지도 않았기에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웠다. 수많은 집을 들러 어떤 집에서는
5만 원, 또 다른 집에서는 3만 원, 5천 원, 이렇게 조금씩 겨우겨우 빌려
신협에 50만 원을 갚았다.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는 나는,
길영이의 지키지 않고 반복되는 “내일은 꼭 갚을게.”
다음날이 되면 “내일은 꼭 갚을게.” 하는 말을 매번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빌려준 돈을 갚기 위해 미용실에서 손님을 받아야 할 내가
손님도 받지 못한 채, 계속 매일 돈을 빌리러 다녔다. 그러다가 너무 신경을 썼는지
신장까지 나빠져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바로 돈을 갚을 줄 알았던 동생은
계속 매일 ‘내일 갚겠다.’는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무려 한 달 정도 다 되었을 때,
그 동생은 갑자기 사색이 되어 미용실에 뛰어들어왔다. 길영이는 절박한 목소리로
“누나, 누나! 큰일 났어. 지금 50만 원이 없으면 피어리스 대리점이 넘어가게 돼.
그러니 누나 달러 돈 좀 빌려다 줘, 그럼 내일 한꺼번에 100만 원 다 갚을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빌려준 100만 원과 외사촌 동생을 향한 마지막 자비
1980년, 미용실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우리 이웃에서 피어리스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작은외숙의 둘째 아들 길영이가 나를 찾아왔다. 길영이는 얼마 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나와 동갑내기였던 점영이의 남동생이었다. 작은외숙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였고, 내가 너무나 예뻐하여 갓난아이 때부터 직접 업어 키운 외사촌 동생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삶의 벼랑 끝에서 청산가리를 구하려 했을 때 그것을 사다 주었던 인연이 있는 아이였다. 그랬던 길영이가 어느 날 다급하게 달려와 사정했다. “누나, 나 지금 50만 원만 좀 빌려줘.” “얘야, 나도 빚을 얻어 미용실을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 큰돈이 있겠느냐?” 내 대답에 길영이는 더욱 매달렸다.
“그럼 누나, 누나가 돈 빌린 신협 전무님한테 50만 원만 더 빌려 달라고 해봐, 응? 나 지금 정말 급해서 그래. 내일은 꼭 갚을게.” 거짓을 가장 멀리했던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내가 돈이 없어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안쓰러운 마음에 “그래? 그럼 전무님께 한번 가보자.” 하고 신협으로 향했다.
나는 전무님께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전무님, 내일 바로 갚을 테니 50만 원만 더 빌릴 수 있을까요?” 다행히 전무님은 “그렇게 하세요. 그 대신 도장을 가지고 오실래요?”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나는 길영이에게 도장을 챙겨서 전무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잠시 후 길영이가 헐레벌떡 뛰어와 말했다. “누나, 누나 도장이라야 한 대.”
나는 동생을 믿고 선뜻 내 도장을 내주었다. 돈을 건네받은 동생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튿날, 바로 갚겠다던 동생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전화를 걸고 대리점으로 찾아가 봐도 소용없더니, 오후 늦게야 전화가 왔다. “누나, 미안해. 내일은 정말 꼭 갚을게.”
나는 평생 약속을 어겨본 적이 없었기에, 신협 전무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집 저집을 다니며 돈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일 꼭 갚을게요.”라며 머리를 숙였다. 당시 50만 원이라는 거금은 결코 쉬운 액수가 아니었다. 미용실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집도 드물었고, 평소 남을 헐뜯는 자리가 싫어 사람을 깊이 사귀지 않았기에 돈을 빌리기는 더욱 고역이었다.
결국 수많은 집을 동분서주하며 들러 5만 원, 3만 원, 심지어 5천 원씩 조금씩 모아 겨우 50만 원을 만들어 신협에 갚았다. 하지만 길영이는 매번 “내일은 꼭 갚을게”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약속을 어겼다. 나는 매번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손님을 받아야 할 시간에 매일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다.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신장까지 나빠져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동생은 한 달 가까이 똑같은 변명만 늘어놓았다. 나는 길영이의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길영이가 사색이 되어 미용실로 뛰어 들어왔다. “누나, 누나! 큰일 났다. 지금 50만 원이 없으면 대리점이 넘어가게 생겼어. 그러니 누나, 달러 이자라도 좋으니 돈 좀 빌려다 줘. 그럼 내일 한꺼번에 100만 원 다 갚을게.”
그동안 동생의 빚을 메우느라 손님도 제대로 못 받고 구걸하다시피 돈을 구하러 한 달간이나 다녔던 고통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색이 되어 달려온 동생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나의 힘든 처지는 금세 잊고 말았다. 나는 달러 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채를 쓰는 손님에게 부탁하여 다시 50만 원을 빌려 길영이에
살아오며 나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서는 배가 고파 쌀 한 번 빌려달라 소리 못 하고 아이들을 굶기기까지 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외사촌 동생 때문에 이집 저집 다니며 구차하게 돈을 빌리러 다녔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차라리 내일 갚겠다는 거짓말 대신, 한동안 빌려달라고 솔직히 말했더라면 대출이라도 받았을 텐데…….’
결국 길영이는 그 길로 행방이 묘연해졌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다. 대리점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길영이가 가져간 100만 원은 고스란히 나의 빚이 되었고, 그 거금을 다 갚기까지는 너무나 길고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시어머니 때문에도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닌 날이 허다했기에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매번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다.
만약 나를 위한 일이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나에게까지 와서 손을 내밀었을까?’ 생각하니, 그 아이가 그저 불쌍하고 가여울 뿐이었다. 내가 겪은 수치와 고통은 모두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니, 비로소 그 무거운 짐을 이겨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