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48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선 피눈물의 퇴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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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나선 피눈물의 퇴원길

내 상태는 결코 퇴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입원 전보다 건강이 더 악화되어, 몸속에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눈치와 불어나는 병원비 생각을 하니 가시방석 같은 병원에 단 일 초도 더 머물 수가 없었다. 나는 힘든 몸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퇴원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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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큰 시누이가 넷째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를 맡긴 지 5일 만이었다. 시누이는 아이만 데려다주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퇴원 수속을 밟아야 하는 내게 도움의 손길이 너무나 절실했지만, 나는 시누이가 퇴원을 성심껏 도와준 셈 치고 봉헌했다. 어쨌든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막막한 상황에서 잠시라도 아이를 봐준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다.
 
시어머니와 달리 시누이는 답례로 돈을 준다 해도 받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나는 얼른 친정어머니께 부탁해 병원 밖 약국에서 영양제 식품 한 병을 사 오시게 했다. “고모, 힘들었을 텐데 아이 봐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돌아가려는 시누이 손에 영양제를 쥐여 보냈다. 돈이 없어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앞섰다.
 
결국 입원 내내 곁을 지키며 모든 수고를 감당하신 분은 오직 친정어머니뿐이었다. 수술비와 병원비조차 어머니께서 광주 큰 이모님한테 빚내고, 여기저기 빌려 마련해 내셨다. 처음엔 급성 맹장염이라 일주일도 안 되어 퇴원할 수 있다더니, 대학병원의 방치와 늑장 검사로 나는 15일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매일 불어나는 비싼 병원비 걱정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악화된 병세보다 친정어머니께 짊어지게 한 그 무거운 빚의 무게가 내 마음을 더 아프게 짓눌렀다. 내가 건강했을 때는 남편과 시댁을 위해 내 한 몸 다 바쳐 죽도록 일해왔다. 정작 내가 죽어갈 때 남편은 퇴원할 때까지 와보지도 않았고, 시댁 식구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움받은 셈치고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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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짐은 오직 친정어머니 몫이었다. 바라지는 않았으나 밀려오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얼른 그들에게 큰 사랑 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친정어머니께서는 퇴원 수속을 마치고 젖먹이는 업고, 두 살배기와 셋째는 걸리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중환자인 나를 힘겹게 부축하셨다.
 
거기다 여러 가지 짐까지 챙겨 들고 눈물 나도록 어려웠던 퇴원길, ‘어차피 광주에서 수술해봤자 도움도 못 받을 거였다면, 차라리 영암 병원에서 수술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랬다면 일주일 만에 퇴원해 정상적인 몸이 되었을 텐데, 그 큰 대학병원에 2주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물만 먹어도 토하던 내게 수액 한 번 놔주지 않았고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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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해준 것은 혈압도 높지 않았는데 매일 혈압 체크와 수술 부위 소독뿐이었다. 수술 직후부터 시작된 구토와 설사, 복통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젖먹이 아이를 며칠씩 굶기며 방치했던 시간들, 간호사들의 학대와 구타, 시어머니의 언행으로 인한 모멸감까지...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사랑받은 셈 치고 봉헌하며 병원을 나섰다.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병원 문을 나서는 심경은 참으로 착잡했다. 치료를 잘 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셈 쳐보려 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택시를 부를 돈도 없었고 남편의 도움도 전혀 기대할 수가 없었다. 편히 차를 타고 가는 셈 쳐봐도 당장 배가 땅겨 걷기도 힘들었다.
 
터미널까지 힘들게 걸어 갔는데 군서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아이가 있었기에 짐은 산더미인데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셋째 손을 잡고 나를 부축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했다. 영암 가는 버스를 타고, 영암 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려 다시 군서 가는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내려 집까지 가는 1km 남짓한 길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애절하게 하느님을 부르짖으며 흘리는 눈물은 닦아낼 힘조차 없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아이들, 그리고 죽어가는 내가 함께 걷던 그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 없는 처절한 피눈물의 길이었으리라. ‘하느님, 그래도 죽지 않고 아이들에게 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우리 어머니와 아이들을 지켜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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