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프로젝트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주님께서 예비하신 삶」- 445화. 차마 놓지 못하던 아이의 손, 어미의 눈물과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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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i01332026-09-25 21:45
아멘 감사합니다.
딸을 위해서 모든 고생을 기꺼이 지기를 자처하시는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큰시누가 아이를 맡아주어서 참 다행입니다.
아이를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혼자가 되신 뒤에야 마음껏 몸부림치셨다는 사실이 너무 짠해요.
지금도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하고 계시는 엄마를 위해 사랑으로 일치하고
남은 시간도 5대 영성으로 무장 실천하여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 제가 받아내는 이 희생과 봉헌이 이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어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신 셈 치고 봉헌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딸을 위해서 모든 고생을 기꺼이 지기를 자처하시는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일화였습니다.
큰시누가 아이를 맡아주어서 참 다행입니다.
아이를 도저히 돌볼 수 없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얼마나 아프셨을까... 혼자가 되신 뒤에야 마음껏 몸부림치셨다는 사실이 너무 짠해요.
지금도 고통을 아름답게 봉헌하고 계시는 엄마를 위해 사랑으로 일치하고
남은 시간도 5대 영성으로 무장 실천하여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 제가 받아내는 이 희생과 봉헌이 이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어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신 셈 치고 봉헌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차마 놓지 못하던 아이의 손, 어미의 눈물과 몸부림
친정어머니가 병원에 오시기 전까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내가 홀로 아이를 돌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사투였다.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분유를 타서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숨 돌릴 틈조차 없었다. 나는 서지도 못하고 기어 다니면서도 아이를 향해 속삭였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무지무지 사랑하는 거 알지?”하며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군서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큰아이들이 있었기에 어머니께서 늘 내 곁에만 계실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나면 배가 당겨 움직이기 힘든 몸으로 다시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 “하느님, 제가 받아내는 이 희생과 봉헌이 이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흘러 들어가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어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신 셈 치고 봉헌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앉으나 서나 딸 걱정뿐이신 어머니는 보다 못해 말씀하셨다. “아야, 너 움직이기도 힘든 몸으로 어떻게 저 어린것을 병원에서 데리고 있겠느냐? 내가 업고 다니마.” 하셨다. 사위와 손주들 뒷바라지에 매일 광주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고생인 어머니가!
그래서 나는 “어머니, 지금도 사위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매일 같이 병원에 왔다 갔다 하시면서 고생이신데, 넷째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시겠다고요? 그것은 절대로 안돼요.” 겨우 4개월 갓난쟁이까지 업고 버스를 타고 다니시며 밤새 아이를 보시겠다니, 진심으로 딸을 생각해서 그 고생까지 마다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해주시는 어머니의 가슴 절절한 사랑에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 때문에 셋째까지 데리고 갖은 고초를 다 겪으시는 어머니께 너무나 죄송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저 할 수 있어요. 걱정마셔요. 사위와 큰아이들 보시느라 광주에서 군서까지 매일 오고 가시는 것만으로 너무 힘드실 텐데요.” 하며 내가 넷째 아이를 돌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옆 침대 자궁암 환자가 애처롭게 어머니께 물었다.
“아니, 먹지도 못하고 물만 먹어도 토하면서, 서지도 잘 못 하고 걷지도 잘못하는 사람이 병원에서 어떻게 저 어린아이를 돌볼 수 있어요?” 하자 친정어머니는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그러게 말이요. 저 혼자 커서...” 하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면 시댁에도 형제들이 없어요?” 하자 어머니는 “있기는 있는데...” 하고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러면 부탁 좀 해보시지 그래요. 이대로는 절대로 안 돼요.” 했다. 결국 어머니는 사위를 통해, 나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큰시누이에게 며칠만 아이를 봐달라고 어렵게 부탁하셨다.
처녀 때부터 나와 친하게 지내며 말도 놓고 지내던 사이라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화답이 무척 고마웠다. 큰시누이가 병원에 와서 분유와 기저귀 등등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내가 “고모, 내가 아파서 미안해. 우리 아기 잘 좀 부탁해.” 하자 큰시누이는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해.” 하고 화답했다.
하지만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아픈 내 탓에 엄마와 생이별하게 된 아기를 보며 눈물로 인사했다. “사랑하는 내 아기야! 엄마가 돌봐주지 못해 미안해. 큰고모한테 가서 부디 건강하게 잘 있다 오렴.” 아기를 보내는 엄마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기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떠난 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제야 침대 위에서 마음껏 몸부림칠 수 있었다. 사랑받은 셈치고 봉헌했지만, 아기가 다칠까 봐 아파도 꼼짝 못 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야 비로소 내 몸에 가득 찬 독을 쏟아내듯 마음대로 몸부림치고 신음하며 어두운 밤을 홀로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