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메시지를 읽어보면 예수님과 성모님은 고통당하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왜 지극히 지존하신 분이 고통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실까 우리는 성당 제대의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 깨달으려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성당을 다니는데 이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이 '신은 있다'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발바닥 신자처럼 다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으로 즉, 우리의 병고와 고통을 진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 명예 등 아주 강력하고 귀하고 존엄한 것을 찬양하는데,
우리를 위해 십자가 못박히신 예수님과 그에 따라 고통 당하시는 성모님을 보여주시는데,
사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는 비천하고 낮은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비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성부 하느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올려 세상 사람들이 그 분을 찬양하도록 보여주십니다.
즉, 세상에서 보면 가장 높은 것을 가장 높이 올린게 아니라
세상에서 보면 가장 낮은 분을 높이 올려, 곧 예수님을 찬양하라고 성부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 등등을 바벨탑이라고 한다면 그와 반대되는 십자가를 찬양,경배하라고 하신 것이죠.
그만큼 바벨탑이 낳은 비극이 크다는 것입니다.
극도로 발달된 물질 문명은 보다 강력하고 높고 위대하게 첨단을 외치면서
영적 발전을 질식시켰고, 제1,제2 세계대전을 터지도록 많은 비극을 일으켰고,
또 수많은 바벨탑과도 같은 오류의 사상들이 등장하여 낙태를 합법화시는 지경에 비극에 이르기도 했죠.
사랑의 메시지와 5대영성은 하느님을 찾고 영적인 것에 맛들이면서 작은 자의 길로 가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기적 만을 보고 믿고, 십자가를 깨닫지 못고 사랑의 메시지와 5대 영성을 실천하여 영적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수많은 오류사상들과 언론매체의 광풍이 불면
쉽게 그 바람에 믿음이 흔들릴 지도 모를 것입니다.
사랑의 메시지를 읽어보면 예수님과 성모님은 고통당하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왜 지극히 지존하신 분이 고통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실까 우리는 성당 제대의 십자가 예수님을
통해 깨달으려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성당을 다니는데 이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이 '신은 있다'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발바닥 신자처럼 다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으로 즉, 우리의 병고와 고통을 진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세상은 돈과 권력, 명예 등 아주 강력하고 귀하고 존엄한 것을 찬양하는데,
우리를 위해 십자가 못박히신 예수님과 그에 따라 고통 당하시는 성모님을 보여주시는데,
사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는 비천하고 낮은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보면 비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예수님을 성부 하느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 올려 세상 사람들이 그 분을 찬양하도록 보여주십니다.
즉, 세상에서 보면 가장 높은 것을 가장 높이 올린게 아니라
세상에서 보면 가장 낮은 분을 높이 올려, 곧 예수님을 찬양하라고 성부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돈과 권력과 명예 등등을 바벨탑이라고 한다면 그와 반대되는 십자가를 찬양,경배하라고 하신 것이죠.
그만큼 바벨탑이 낳은 비극이 크다는 것입니다.
극도로 발달된 물질 문명은 보다 강력하고 높고 위대하게 첨단을 외치면서
영적 발전을 질식시켰고, 제1,제2 세계대전을 터지도록 많은 비극을 일으켰고,
또 수많은 바벨탑과도 같은 오류의 사상들이 등장하여 낙태를 합법화시는 지경에 비극에 이르기도 했죠.
사랑의 메시지와 5대영성은 하느님을 찾고 영적인 것에 맛들이면서 작은 자의 길로 가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기적 만을 보고 믿고, 십자가를 깨닫지 못고 사랑의 메시지와 5대 영성을 실천하여 영적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수많은 오류사상들과 언론매체의 광풍이 불면
쉽게 그 바람에 믿음이 흔들릴 지도 모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