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늘 높은 곳까지 오르려면 바벨탑을 만들어서 꼭대기에 올라가면 안됩니다.
성경에 하느님께서 그 위험성을 알고서 질투하시면서 흩어버리고 무너뜨리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으로 바벨탑을 쌓아서 자아의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아가 커지려고만 합니다.
낮추인 마음 아니 낮추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5대영성으로서
자아를 낮추고 작게 해서 정화하고 비우고 봉헌한다면, 그것으로 역전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을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주시고 하늘 높은 곳까지 올려주시는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들고 괴로울 때, 또 묵주기도나 다른 기도를 바칠 때
무의식적으로 욕을 하고 한탄하고 우울해지고, 또 이상한 잡념들이 들어오고
그러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자아가 커져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아의 무의식 속에 욕설이 들어 있고, 미디어매체들 속의 사상과 이념, 주장들 그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실망감이 들어있고, 우울함이
들어서 우리 자아가 그런 환경 속에서 커져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5대 영성은 우리의 바벨탑과도 같이 무의식적으로 거대해지려는 자아를 깍고 깍아
작아지게 하는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걸으면서 지나가다 상념에 잠겨 우울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걸으면서 생활의 기도를 바치니 그 우울증이 사라지고 생기가 돌아오더군요.
자아를 밟아서 작게 하는 셈치고 기도를 바치니 그 빈 마음에 주님깨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 즉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주는 것인데, 그것은 기쁨, 생기, 삶에 대한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가 크면 클수록 돈이 태산 같아도 중독되어서 만족해지지 않을 것이고,
자아가 작으면 작을 수록 생활의 기도와 같이 바친다면, 우리는 매일의 밥 한 숟갈에도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메시지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었지만,
영적인 상태는 타락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 문명은 중독성 때문에 아무리 많은 부를 준다한들
행복은 그때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우울감을 주고 공허함이 배어들고
그 고마운 일상의 식사에는 기쁨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벨탑과도 같은 강력한 국가를 꿈꿨던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이 무너졌고,
그 자아의 무너짐 바탕위에 주님의 부활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그 무너진 빈마음에 채워졌습니다.
5대영성은 급격한 무너짐을 유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점진적으로 차근차근히 자아를 무너뜨려서 빈마음을 만들고,
그 빈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5대 영성의 논리는 이 세상의 논리와 반대되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대 영성의 논리로서 영성이 풍해져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우리가 하늘 높은 곳까지 오르려면 바벨탑을 만들어서 꼭대기에 올라가면 안됩니다.
성경에 하느님께서 그 위험성을 알고서 질투하시면서 흩어버리고 무너뜨리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으로 바벨탑을 쌓아서 자아의 바벨탑을 쌓으면서 자아가 커지려고만 합니다.
낮추인 마음 아니 낮추어 보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5대영성으로서
자아를 낮추고 작게 해서 정화하고 비우고 봉헌한다면, 그것으로 역전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을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주시고 하늘 높은 곳까지 올려주시는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힘이 들고 괴로울 때, 또 묵주기도나 다른 기도를 바칠 때
무의식적으로 욕을 하고 한탄하고 우울해지고, 또 이상한 잡념들이 들어오고
그러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자아가 커져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아의 무의식 속에 욕설이 들어 있고, 미디어매체들 속의 사상과 이념, 주장들 그에
대한 욕망으로 인한 실망감이 들어있고, 우울함이
들어서 우리 자아가 그런 환경 속에서 커져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5대 영성은 우리의 바벨탑과도 같이 무의식적으로 거대해지려는 자아를 깍고 깍아
작아지게 하는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걸으면서 지나가다 상념에 잠겨 우울해지곤 했는데,
지금은 걸으면서 생활의 기도를 바치니 그 우울증이 사라지고 생기가 돌아오더군요.
자아를 밟아서 작게 하는 셈치고 기도를 바치니 그 빈 마음에 주님깨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 즉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주는 것인데, 그것은 기쁨, 생기, 삶에 대한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가 크면 클수록 돈이 태산 같아도 중독되어서 만족해지지 않을 것이고,
자아가 작으면 작을 수록 생활의 기도와 같이 바친다면, 우리는 매일의 밥 한 숟갈에도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메시지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었지만,
영적인 상태는 타락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 문명은 중독성 때문에 아무리 많은 부를 준다한들
행복은 그때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우울감을 주고 공허함이 배어들고
그 고마운 일상의 식사에는 기쁨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벨탑과도 같은 강력한 국가를 꿈꿨던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으로 그 모든 것이 무너졌고,
그 자아의 무너짐 바탕위에 주님의 부활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주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그 무너진 빈마음에 채워졌습니다.
5대영성은 급격한 무너짐을 유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점진적으로 차근차근히 자아를 무너뜨려서 빈마음을 만들고,
그 빈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것 같습니다.
5대 영성의 논리는 이 세상의 논리와 반대되는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대 영성의 논리로서 영성이 풍해져서 부활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아멘.